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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존 말코비치 되기 - 타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

토아드 2019. 7. 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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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말코비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낮은 천장의 층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된다. 낮은 천장의 층은 남들보다 작은 키를 가진 여성이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해서는 만들어 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만들어 지게 된 층이다. 낮은 천장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고 나면 존 말코비치의 의식에 들어갈 수 있는 관문이 나오게 되는데 이 관문은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가야지만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까지 가는 이들은 존 말코비치의 시선에서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타인이 되기 위해 타인과의 비교로 만들어진 낮은 천장을 숙여 걸어가고, 관문을 기어가야 비로소 타인이 될 수 있다. 가까스로 타인이 된다 한들 곧바로 하늘에서 내동댕이 쳐지고 만다.

 

 작중에서 인형 조종사를 하는 크레이그는 타인이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업으로 삼은 일 조차 인형을 조종하며 마치 타인이 된 듯한 자신을 느끼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기꺼이 타인이 되고, 영화가 끝날 때 까지 타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크레이그의 아내인 로테 역시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기꺼이 타인이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 로테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행복을 손에 얻는다. 하지만 행복의 상징인 자신의 자식은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며,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다.

 크레이그와 로테의 마음을 빼앗은 맥신은 작중 단 한번도 존 말코비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이 특별하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레스터 박사는 온전히 자신의 영원한  인생을 위해서만 타인이 된다. 타인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목적은 자기 영혼의 존속에 있다.

 존 말코비치는 본업이 타인을 연기하는 배우이다. 타인을 연기함과 동시에 존 말코비치 이외의 사람들은 존 말코비치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말코비치는 극중 자신을 쉽게 잃어버리고 타인이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침식당한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타인이 되고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지는 것 같았다. 끝까지 타인이 되고 싶어하던 크레이그는 타인의 의식속에 잠겨 자신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되고, 타인이 되는 것을 단념한 로테는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타인이 되기 위한 관문은 몸을 구부리고 땅을 기어가면서 들어가야 한다. 일순간 타인이 된다 한들 금방 쫓겨나게 되고, 타인을 잘 조종하게 된다 하더라도 스스로 포기하고 영원히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의식 없이 살아가게 된다.

 

 타인이 되고싶어 하는 것은 기어가는 삶과 같으며, 그 결말은 자신의 의식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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